문방구는 아직 거기 있었다
지나간 사랑은 때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돌아온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연히 그 길을 지났고, 설마 아직도 그 문방구가 남아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정문 옆에 붙어 있던 작은 문방구.
아버지가 어릴 때도 있었고, 내가 입학했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종갓집 장녀였던 나는 4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자랐다. 동네 유지셨던 증조할아버지 덕에 우리 집은 대대로 유복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부족함 없이 자랐고 나 역시 그 유복함을 한껏 누렸다.
동네에는 학교가 하나뿐이었다.
그 학교를 할아버지가 다녔고, 아버지가 다녔고, 나 역시 똑같이 그 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 처음 뵌 교장 선생님은 아버지 1학년 때 담임이셨고, 교감 선생님은 아버지가 다닐 때 주임 선생님이셨다고 했다.
학교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였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을버스를 타고 등하교할 때 나는 아버지가 직접 승용차로 등하교를 시켜주셨다.
등하교길엔 늘 작은 문방구를 지나쳤다.
문방구에서는 떡볶이 냄새와 군것질 냄새가 늘 섞여 났다.
분식과 불량식품을 함께 팔던 그 가게는 아버지가 2학년 때 처음 생긴 곳이라고 했다.
파혼하고 집에 돌아온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딱히 어디가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자니 숨이 막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때가 되면 온갖 산해진미로 상을 차려주고, 내가 방에서 나오면 못 본 척 TV를 켜시거나 책을 집어드셨다.
그 배려가 고마웠지만 동시에 서럽고 숨 막혔다.
결국 나는 아침을 먹고, 부모님이 소일거리 겸 텃밭을 가꾸러 나가신 사이 대충 휴대폰 하나 챙겨서 나왔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어디선가 바람결에 달큰한 아카시아 향이 섞여 들었다.
5월, 흰 아카시아.
초록색 줄기 두 개를 따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입가가 가벼워졌다.
나는 오랜만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기로 했다.
마침 근처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로 여덟 정거장 정도였다.
처음이었다. 이 동네에서 마을버스를 타본 게.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처음 올라탔다.
버스는 낡았고 덜컹거렸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문득 아버지 차 뒷좌석에 앉아서 창밖으로 버스 안에서 서로 장난을 치던 동네 친구들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친구들은 나와 잘 놀아줬지만 친구들과 내 사이엔 어딘가 알 수 없는 벽이 느껴지곤 했다.
그게 싫어서 부모님을 졸라 마을버스로 몇 번 통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낡은 버스의 덜컹거림은 내가 적응할 수 없었고, 원래도 몸이 약한 데다 멀미도 심했던 나는 결국 다시 아버지 차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는 예전 그대로의 길을 달렸다.
슈퍼가 편의점이 되어 있었고, 이발소가 사라진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그래도 큰 흐름은 같았다.
최씨 아저씨네 논이 있고, 장미화원을 하던 양씨 아저씨네 초록지붕집도 보였다. 저 멀리 야산이 희끗하게 보였고 그 아래 익숙한 낮은 지붕들이 버스 창문 너머로 흐릿하게 일그러지며 지나갔다.
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문은 새로 단장을 했는지 예전보다 깔끔했다.
나는 잠시 서서 정문을 바라봤다.
이 학교를 마지막으로 걸어나온 게 열두 살 때였다. 서울로 유학을 간다고 책가방을 등에 매고 아버지 차에 올라타던 날.
그때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문방구는 정문 바로 옆에 있었다.
간판도 그대로였다. 손으로 직접 쓴 것 같은 글씨체도, 빛바랜 파란 바탕도.
이십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저게 아직 저 자리에 있는 거야.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간판을 바라봤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업이 끝난 시간인지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떡볶이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조였다.
이십 년 전 그 냄새 그대로였다.
옛날식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떡볶이와 기름 냄새가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한 남자가 보였다.
교사용 명찰을 달고 있었다. 키가 컸다. 아이 하나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뭔가를 조르고 있었고, 그는 웃으며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알아볼 수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웃을 때 눈이 먼저 웃는 것도,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이준혁.
내 첫사랑이자 내 첫 뽀뽀의 주인공.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잠깐 커지더니 이내 호선을 그렸다.
“…은지? 은지 맞지?”
이십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예전과 달리 낮았다. 하지만 여전히 따스함과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
순간 눈가가 시큰거렸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선생님, 누구예요?”
아이들이 우리 둘을 번갈아봤다.
준혁이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친구야. 이 친구도 우리 학교 다녔어.”
그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허리를 숙여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선생님한테 떡볶이 얻어먹으러 왔어?”
“네!”
“떡볶이 말고 다른 건 안 먹고 싶어? 튀김이랑 순대도 시켜. 내가 사줄게.”
아이들이 환호했다.
잠시 뒤 준혁이가 웃음을 참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그런데, 너희들끼리 먹을래? 계산은 선생님이랑 이 누나가 했으니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먹어. 먹고 나서 길 조심해서 집 가야 해, 알았지?”
“네!”
아이들이 다시 떼창으로 대답했다.
준혁이가 내게 말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차 한잔 어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뭐 없는 거 알지? 학교 구경도 할 겸 들어가자. 내가 맛있는 커피 타줄게.”
우리는 나란히 문방구를 나섰다.
5월의 햇살이 생각보다 따가웠다.
살짝 어두웠던 문방구를 나서자 강한 햇살에 눈가가 찡했다. 잠시 어지러워 걸음을 멈추자 준혁의 손이 내 팔뚝에 닿았다.
“괜찮아?”
“아… 응. 고마워.”
나는 살짝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떼고 교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십 년 만인데 어색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아니, 어색한데 어색하다고 느낄 틈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와.”
넓이는 기억과 비슷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그네랑 미끄럼틀만 덩그러니 있던 자리에는 여러 놀이기구가 들어차 있었다.
“우리 다닐 땐 그네랑 미끄럼틀만 있지 않았어?”
“맞아. 그랬지.”
그네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준혁이가 그쪽을 보며 말했다.
“그네가 워낙 인기여서 줄 서서 시간 정해놓고 탔잖아.”
“맞아. 삼 분인가 오 분인가 정해놓고. 넘기면 뒤에서 난리 났었지.”
“난리는.”
준혁이가 피식 웃었다.
“넌 줄도 안 섰잖아. 맨날 쉬는 시간 시작하자마자 달려가서 선점하고.”
“그게 전략이지.”
“그래, 전략.”
오랜만에 배 속에서 웃음이 올라왔다.
준혁이가 따라 웃었다.
“너 그네에 고무줄 묶어서 고무줄놀이 하는 거 좋아했잖아.”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검은색 고무줄.
쉬는 시간마다 여자애들끼리 그네 기둥에 고무줄을 묶었다.
그날도 한창 놀고 있었고, 장난꾸러기 주성이가 나타나 어김없이 고무줄을 끊었다.
하필 새 고무줄이 없었다.
억울했고 서러웠다.
나는 그네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그때 그림자가 드리웠다.
올려다보니 준혁이었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책을 읽다 왔는지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준혁이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느티나무에 기대 앉아 혼자 책을 읽었다.
조용하고 느렸다.
어린 나는 그게 좋았다.
준혁이는 한참 나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 모퉁이를 살짝 접어 덮고는 그냥 거기 앉아 있었다.
나란히.
얼마나 지났을까.
준혁이가 입을 열었다.
“주성이는 원래 저래.”
그게 다였다.
위로도 아니고 해결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로 충분했다.
그다음 날 준혁이는 아무 말 없이 새 고무줄을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게 내 시작이었다.
준혁이를 향한 풋풋하고 질긴 짝사랑.
바람이 불었다.
5월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운동장이었다.
느티나무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네는 비어 있었다.
교무실에서 준혁이가 머그컵을 내밀었다.
받으려고 손을 뻗는데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왼손 약지.
심플한 은색 밴드.
잠시 멈칫하는데 준혁이가 내 시선을 따라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결혼했어.”
“결혼했구나.”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서로 마주 본 우리는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따뜻했다.
그는 여전했다.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한결같이 잘 살고 있었다.
“꿈 이뤘네.”
“…응?”
“너 말이야. 선생님이 돼서 이 학교 지키는 거. 꿈이었잖아.”
“그걸 아직 기억해?”
“그럼, 기억하지. 네가 내 첫사랑인데.”
준혁이가 피식 웃었다.
“잘 지내는 모습 보니까 좋다.”
“너는? 너는 어떻게 지냈어?”
“그럭저럭.”
“여긴 언제 내려온 거야?”
“열흘 됐어.”
준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창밖으로 느티나무가 보였다.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네는 비어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도 우리는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하면서.
서로 아는 친구들의 근황, 졸업식 날 누가 울었는지, 옛 담임 선생님 이야기. 기억이 맞지 않아 서로 우기기도 하고 뒤늦게 기억이 나서 서로 틀렸다며 웃기도 했다.
교문을 나설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준혁이가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다.
아무도 먼저 그러자고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멀리서 마을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 앞에 섰다.
문이 열렸다.
올라타려다 돌아섰다.
그리고 까치발을 살짝 들어 준혁이의 볼에 입술을 댔다.
닿을 듯 말 듯, 아주 옅게.
“내 첫 뽀뽀. 돌려받는 거야.”
준혁이가 굳었다.
나는 웃었다.
“행복해. 나도 행복할게.”
버스에 올라탔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준혁이가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녀석이 뺨을 왼손으로 쓸었다.
이내 옅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정류장이 멀어졌다. 느티나무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최씨 아저씨네 논이 지나갔다. 양씨 아저씨네 초록지붕집이 흐릿하게 일그러지며 멀어졌다.
버스는 덜컹거렸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기댔다.
흔들려도 괜찮았다.
멀미가 날 것 같으면 나면 되는 거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한테 말해야겠다.
내일부터 밥은 혼자 차려 먹겠다고.
슬슬 서울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창밖으로 5월의 들판이 펼쳐졌다.
아카시아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이 닫혀 있는데도 달큰한 향이 코끝을 스몄다.
─ 完